안창호 이동휘 신채호 이승만 작업 : 그림


도산 안창호

신민회와 미주에서 흥사단 활동 이후 임시정부의 (임시)총리직을 맡았고,
분열된 임시정부를 재건하기 위해 국민대표회의를 주도했습니다.
결국 임시정부의 분열은 막을 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후로도 이념의 대립을 넘어선 통일 정부, 당을 수립하기 위해
중국, 만주, 간도, 러시아, 미주 등을 순회하시며 바쁜 독립운동생활을 하셨습니다.
이후 전개하게 된 임시정부의 통일노선의 구축은 도산 선생님의 공로로 봐도 될 듯 합니다.



성재 이동휘

신민회 활동에 참석하였고 공산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한인 사회당, 고려 공산당등을 창당하고 코민테른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승만의 대미외교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초기부터 대립 양상을 보였는데
코민테른 자금조달 문제등으로 1920년 임시정부를 떠나게됩니다.
남한에서 확실한 연구가 되지 않은 인물인 듯 싶습니다.
1920년대 임시정부 활동 이후로는 언급이 크게 없는 것을 보니...



단재 신채호

역사학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로서
좌익에 속하며 무정부주의로 정치운동을 벌입니다.
이승만의 위임통치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한 후 임시정부 구성 이전에 바로 발을 뺐고,
이후 국민대표회의시기 창조파의 대표주자로 불리게 됩니다.
의열단에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게 되는데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외교론과 자치론을 배격한 강경한 폭력투쟁, 민중혁명노선을 걷게 됩니다.



우남 이승만... ... 엥?


우남 이승만

미주에서 활발한 정치 활동으로 일찍이 언론과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는 임시정부의 대표로 추대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임시정부 우남 선생님은 외교활동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그러면서 무장투쟁론 등을 주장한 다른 독립운동 세력들과 대립을 하게 되지요.
강력한 대미외교론자로 반대소외교와 반공주의등을 내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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